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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9.03.
    -진행: 노혁이, 백조미

    -2024 파리올림픽-

    백: 

    1976년을 기점으로 중화민국(당시에는 자유중국으로 더 많이 불렸던 것 같음) 대표단이 하계올림픽 경기에서 퇴출하면서 (주최측의 우리 참가 대표단 명칭 변경 강요로) 한동안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였고 나중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와 협상하여 '중화 타이베이'이라는 명칭으로 올림픽 경기에 복귀하기로 한 후 예전에 '자유중국'이라고 불렸든, '중화민국'이라고 불렸든 또는 지금 '타이완'이라고 부르든 올림픽 경기에 참가할 때 국명이 아닌 '차이니즈 타이베이(중화 타이베이)'를 가슴에 달고 출전하게 되었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타이완은 종합 35위, 한국은 종합 8위에 올랐다. 선수들이 세계 최고까지 달리기 위하여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참으로 존경스럽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낭만과 예술, 와인,,, 그러면 가장 먼저 프랑스 파리가 떠오르는데 스포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올림픽대회의 개회와 폐회식에는 관심을 갖고 관람한다. 오래 전 매스 게임을 주로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주최국의 문화와 역사, 민속, 철학 등을 다양하며 독특하게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매력적이다.  

    노: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파리라면 지난 백여년 동안 사실 문화의 종주국 같은 느낌이었다.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

    그런데, 개막식을 보고, 한국의 K팝스타의 공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올림픽의 개막식 폐막식은 전세계의 잔치아닌가?

    예전 미국 1984년 LA의 개막식에서 추진기를 단 사람이 날아다니던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

    프랑스는 이제 전세계 문화의 변두리가 된 느낌이었다.

    대만의 금메달 소식

    대만의 왕치린-리양 조와 중국의 량웨이펑-왕창 조가 맞붙었다.

    대만 타이베이 중앙역에는 1000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대만 선수들을 응원

    또 추가된 금메달소식. 대만 여자복서 린위팅

    칼리프 이마네(알제리)와 함께 성별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두 선수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제복싱협회(IBA)로부터 일반적으로 남성을 의미하는 'XY 염색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실격 처분됐기 때문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여권에 표기된 성별을 기준으로 삼는다며 두 선수의 올림픽 출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

    대만의 올림픽기와 중국국기가 같이 올라가던 장면

    대만은 타이쯔잉이라는 아주 전설적인 선수가 있었고

    한국도 이번에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한국도 메달을 많이 땄다. 사실 전망이 좋지 않아서 메인 스폰서였던 삼성이 걱정이 많았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주 좋았다. 원래 목표는 5개

    그런데 올림픽 참가 역사상 최대인 13개의 금메달을 땄다.

    폐막식에 탐크루즈가 올림픽기를 받아서 가는 이벤트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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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8.27.
    -진행: 노혁이, 백조미

    -한국 일제강점기의 대만 소식-

    백:

    타이완이 일본인 손에 넘어간 경위와 한반도가 일본에 의해 점령된 과정은 조금 다르다. 다만 가까운 근대사의 사실(史實)이어서 잊혀지지 못하는 암울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 시기 한반도에서는 타이완에 관한 신문 기사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떠한 소식들이 한반도의 관심을 끌었을지 궁금하다.

    노:

    1920년대

    대만에 폭풍우, 남부피해. 광경이 극히 처참. 생번반항, 대만 대지진

    1921년 대만타주구리 어산에 화산폭발

    21년 8월. 대만사람 진만력. 부처를 열심으로 믿었다. 채식만하면서 나한이 되겠다. 대중과 대남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불속으로 뛰어들려했다. 경관이 제지. 동지자 열명을 데리고 기륭에서 펑후로 가서. 마궁에 있는 도원사 부근에서 열사람이 바다에 단체 투신. 다섯명은 여자였다.

     

    21년 5월 1일부터 대만에서는 태형이 폐지되었다.

    22년 8월 폭풍우 손해

    22년 3월, 펑후에서 어민 23명이 고기잡으러 나갔다가 배가 엎어져서 모두 사망. 시신 19구를 발견

    22년 2월 대만 아리산 철도, 자의역에서 9마일 되는 지점에서 화물기관차 전복. 작년 3월에도 사고가 있었던 곳. 3명이 중상

    22년 12월 대만 기륭 인근에서 공동환이라는 기선이 폭풍으로 침몰. 46명이 사망

    22년 11월 대만총독부 의학전문학교 교수 두청명씨가 약물에 관한 학위논문으로 경도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 취득. 대만 최초의 박사학위자

     

    24년 9월, 조선현주인구는

    조선인 1744만

    일본인 40만

    외국인 3만5천

    1788만

    인구밀도는 일방리 천이백오십명. 일본의 이천이백삼십구보다 적고, 대만보다는 사백이십사인이 적다.

    24년 4월 생번족처녀도 자유결혼열망… 대만 대북의 생번고사족 묘령의 처녀 4명이 목을 맨 사건. 두명을 죽고 두명은 살아남. 원주민에게 시집가기 싫고 자유롭게 결혼을 하고 싶다. 강제 결혼을 시키려는 부모에 원망

     

    25년 10월. 대만총인구 499만사천

    남 205만 여 193만

    25년 9월 대폭풍우가 또 대만을 엄습

    25년 4월 대만에 지진

    25년 10월. 조선에 결핵성 환자가 1만2천. 폐결핵

    병원1개당 조선은 174500명, 의사1인에 2700명
    일본은 병원1개당 3900명, 의사1인에 1천300명

    대만은 병원1개당 삼만2천, 의사1인에 이천오백

    조선이 위생방면에 뒤져있다

     

    25년1월 세계각국의 이상한 풍속: 서양에서 먹는 개고기는 대단히 크다. 길이가 일척칠팔촌. 혹이 일곱치. 기름에 지저먹고 삶아 먹으면 맛이 있다.

    이태리라는 나라는 고기 뱃속에서 나오는 촌백충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중국에서는 구렁이 전골을 먹고. 대만사람들은 귀뚜라미를 맛나게 먹는다. 중국에서는 전갈이라는 날벌레를 앗적앗적 씹어 먹는다.

    墨西哥묵서가 사람들은 벌레 개미, 모기, 뱀 도마뱀을 진미로 알고 먹는다.

    26년 5월. 대만신주, 조를 심을 때 서리가 내렸다. 기근상태. 원주민 1천4백명이 굶주렸다. 후셋구라는 풀싹을 먹고 겨우 버티는데. 아사자가 20명. 당국에서 배급미 수송.

     

    26년 1월. 대만에 흑사병, 8월에 폭풍우

    26년 5월 대만사람의 긔괴한 풍습, 데릴사위. 장인과 사위사이에 엄죽한 계약서. 오년 또는 육년, 정한 기한안에 자녀를 생산치 못하면 장인이 능히 사위를 자유로 언제든지 쪼차낼 수 있고, 아이를 나으면 첫째는 장인의 목. 둘째는 사위의 목. 세째는 장인, 넷째는 사위. 첫째아이는 외할아버지를 따라 성을 갖고. 둘째는 아버지의 성을 갖게 됨.

    원래 장인의 집에서 내쫓길때에는 자기목의 아이만 데리고 나가게 되는데, 인물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이 한편으로 치우쳤을때는 서로 싸우기도 한다.

     

    26년 1월 전화가입자

    조선 25500

    일본인은 이십인에 1개. 조선인은 5220명에 1개. 외국인은 80인에 1개.

    일본에서는 136인에 1대, 만주는 74인에 1대, 대만은 340인에 1대. à 대만이 상당히 발전

     

    26년 7월 조선 정신병자수 2500, 인구만명에 병자1인. 정신병자는 근대문명의 산물. 일본은 57820명 대만은 2384명,

    26년 1월. 대만대북 羅東군번 생번교화의 목적으로 전등을 가설했더니 생번들이 별을 따왔다고 소동을 하여, 당국에서는 소학교에 다니는 생번아동에게 전기에 대한 설명을 하여 겨우 진정되었더라.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8.20.
    -진행: 노혁이, 백조미

    -N포와 탕핑족이 되려고 된 게 아닌 청년세대-

    백:

    사회 새내기, 2030 젊은 세대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행정원 주계총처가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타이완의 5월달 실업률은 3.34%이며, 이중 20세에서 24세 사이 청년 실업률은 11.33%로 각 연령층 가운데 실업률 면에서는 가장 높다.

    중국의 청년실업률은 더 심각하다. 중국국가통계국이 8월16일 발표한 7월분 청년실업률은 6월 대비 3.9%포인트 늘어난 17.1%에 달했다.

    가을에 새학기를 맞는 학제라서 그런지 7, 8월 졸업시즌을 맞아 청년 실업률은 항상 그 해의 최고점을 찍게 된다.

    N포 세대, 탕핑(躺平)족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더 열심히 살고싶게 하고 꿈과 희망을 추구하려는 동력이 생기며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도록 현실에 부합하는 제대로된 정책과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노: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해 국내 대학·대학원 졸업자 3명 중 1명 이상은 미취업 상태였다. 취업률로 보면 65.1%로 역대 최저치.

    '문송합니다' à  의약계열(82.1%)과 공학계열(67.7%)의 취업률은 전체 평균(65.1%)보다 높았다. 반면 인문계열(53.5%)과 사회계열(60.9%), 교육계열(62.1%), 예체능계열(62.2%), 자연계열(62.3%)은 평균을 밑도는 것

    취업까지 걸린 시간을 보면, 35.2%가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다. 졸업 후 3개월 이내 취업은 22.7%, 9개월 이내 16.4%, 6개월 이내 14.9%, 10개월 이상 지난 후 취업한 사례는 10.8% 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에는 나아졌을까?

    국내 4년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이수영(가명·28) 씨는 졸업 후 대기업 입사를 원했지만 여러 차례 낙방한 끝에 중소 교육 콘텐츠 제작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각종 허드렛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일당백’ 신입 생활에 지쳐 1년여 만에 퇴사했다. 이후 출판사에 들어갔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1년여 만에 그만뒀다. 퇴사한 지 1년이 넘은 현재는 구직 활동을 그만둔 채 쉬고 있다. 이 씨는 “다시 ‘취업 전쟁’에 뛰어들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à 15∼29세 청년 비(非)경제활동인구 중 학업, 취업 준비 등의 활동 없이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은 약 39만 명

    중국도 청년 요양원 열풍 à 중국의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 '요양원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취업난에 지친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양원으로 몰리면서 청년 전용 요양원까지 등장했다.
    탕핑이란 드러누울 당(躺)과 평평할 평(平)의 조합으로, 편하게 드러눕는다는 의미다.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 중국 젊은이들이 구직을 포기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보낸다는 뜻

    취업난에 지친 청년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탕핑’을 즐기고자 ‘청년 요양원’을 찾는다"며 “시설 이용료는 보통 월 1500위안(약 28만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어 "탕핑족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통한 조기 은퇴를 계획하는 30대 ‘파이어족’도 소비를 줄이기 위해 이 요양원을 찾는다"

    대만도 청년이 힘들기는 마찬가지.

    집세에 쫓기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흙수저 출신의 청년을 일컫는 '베이피아오(北漂)'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야기시켰다. 제대로 수입을 내기 위해 여러 개의 일을 병행하며 돈을 버는 젊은 근로자인 '시에강(合作)'도 있고, 월급을 생활비에 저축할 돈이 없는 '위에강주(月光族)'도 있다.

    취업을 둘러싸고 맞물려 있는 저임금 문제, 거주 공간 문제, 불안정한 고용상태 등이 복합적 à “청년실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들이 취직해서 아무리 열심히 일 한다 해도 근근이 연명만 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가 된다는 것”이라며 “믿기지 않을 만큼 낮은 임금 수준과 이에 걸맞지 않게 높은 부동산 가격이 문제”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8.13.
    -진행: 노혁이, 백조미

    -국제와의 연결 -탐라문견록의 대만 표류기

    백:

    지난 주에 이어 <탐라문건록>과 관련하여 국제 간의 연결, 동서양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1700년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잠시 타이완에 머물게 된 한국인이 그 당시 직접 보고 느꼈던 타이완을 기록한 내용이 있다. 일부 표현은 다소 과장된 듯하나 그래도 매우 소중한 사료가 될 수 있어 그러한 기록을 남겨준 분들이 많이 고맙다.

    노:

    1729년 윤도성(尹道成) 일행 30인이 제주에서 육지를 향해 배를 띄웠다가 불행히 풍랑을 만나 대만에 표착했다. 창화현 대돌두. 9개월의 시간이 걸려서야 복건성(福建省), 소주(蘇州) 등지로 해서 북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돌아갔다. 

    à 대만과 조선의 최초 민간 교류 문자 기록(진경지 정치대교수, 18세기 조선 표류인의 눈으로 바라본 대만(臺灣)의 겉과 속))

    대만으로 표류했던 윤도성은 제주의 상인이었고, 송완은 제주의 관원이었다. 윤도성은 1729년 장사를 목적으로 제주에서 육지를 향해 배를 띄웠다가 표류했으며 함께 동승했던 인원이 30인이었다.

    송완의 간략한 표류기에 비해 윤도성 표류기의 내용은 비교적 많고 자세하다. 날짜별로 표류, 구조, 이송 등의 과정을 순서대로 서술 송완은 그냥 공무원. 윤도성은 사업가.

    대만의 1729년의 풍경

    ㅡ ‘서우’의 크기는 보통 소의 세 배가량 되었다. 뿔은 길이가 서너 자나 되고, 색깔 은 옻칠처럼 검었다.5) 양과 말과 나귀는 모두 토산이 아니라 몹시 희귀하다. ‘서우’는 아주 많다. à 대만의 물소

    ㅡ 원주민의 생활상: 온 마을의 남녀가 모여서 일행을 보며 시끄럽게 떠드는데, 말소리가 짱알짱알하여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윤도성이 나뭇가지 끝으로 땅에다 글을 써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곳은 어느 나라 어느 땅인가?” 한 사람이 나서서 이를 보더니만 또한 땅에다 썼다. “대청국 대만부와 맞닿은 창화현 대돌두사번(大突頭社番)의 통사관이다. 너희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어떤 연유로 여기에 이르렀는가?”10)

    ㅡ  통사란 관직은 정 씨(정성공) 정권부터 설립된 하급 관리로서 주로 원주민 말에 능통한 한족 사람이 담당했다. 통사는 원주민 부락 안이나 근처에 살며 부역 내용을 전달하거나 통역하는 역할을 했다.11) 윤도성 일행이 간 곳은 바로 통사가 근무하는 통사관이었으며 일행이 만났던 사람들은 한족 통사관과 평포족 원주민

    ㅡ 양옆에는 군사가 따라오는데, 모두 대나무로 만든 활과 뽕나무로 만든 화살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두 귀를 뚫어 사슴뿔 귀고리를 달았고, 쇠로 만든 팔찌를 두 팔뚝에 차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긴 웃옷만 입고, 바지는 입지 않았다.1

    ㅡ 날씨는 따뜻했고,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은 습했다. 여염집은 모두 2층의 다락집으로 지었다. 네 계절 언제나 다락 위에서 산다. 방은 모두 갈대와 대나무로 시렁을 짰다

    ㅡ 표류하던 사람들의 짐에서 마패가 나왔다. 마패는 관원들이 공무를 수행하며 지방으로 나갈 때 역마를 징발하는 증표로 쓰던 둥근 구리 패였다. 한쪽 면에는 연호와 연월일을 새기고 다른 한쪽에는 말을 새겼다. à “마패 가운데 어째서 명나라 때 쓰던 천계(天啓) 연호가 있는가 (명나라는 1644년 멸망)

    ㅡ 대만 사람이 마패 가운데 천계 연호가 있는것을 보고 다투어 전하여 살펴보더니,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대명의 제도가 여기에 남았구나.” 어떤 이는 탄식하면서 마패를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기색이 말과 얼굴에 드러났다 -> 대만을 잠시 지배했던 정성공은 1962년 39세 나이로 사망. 당시 정성공의 대만은 반청복명주의… 1729년은 표류할당시. 1721년에도 주일귀란 사람이 반란. 2개월만에 진압. 청나라 정부는 대만에 잔류한 반청 세력을 없애기 위해 1723년까지 군사활동 지속

    윤도성 일행이 창화현에 있는 상제묘에 있었을 때 진사(進士)라고 자칭한 자가 와서 글을 써서 물었다. “너희 나라의 법은 같은 성씨끼리 혼인하는 것을 금하는가?” “그렇다.” 그가 또 글을 써서 물었다. “부인네는 개가( )를 하는가?” “아니다. 그런 풍속은 없다.” “청상과부가 자식이 없으면 어디에 기대어 생활하는가?” “비록 쓸쓸히 돌아갈 데가 없어도 친척이나 이웃에 기대어 살더라도 개가하는 일은 없다.” 진사가 말했다. “아! 조선은 예의의 나라로구나. 아름다운 풍속이 이 같은 줄은 몰랐다.”

    1683년 청나라가 대만 정 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서 반청 세력을 방비하기 위해 대만편사유우령(臺灣編査 寓令)」을 내렸다. 이 명령 때문에 대만 해협을 건널 때마다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대만으로 갈 때 가족과 동행할 수 없고 이미 대만에 있는 사람도 가족을 데려올 수 없게 되었다. 이 명령으로 인해 발생한 첫 번째 사회 문제는 바로 남녀 성별의 불균형 현상이다. 남다여소(男多女少)의 대만 이민 사회에서는 심지어 결혼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형편없는 나한각(羅漢脚)이란 계층 형성되어 절도나 싸움과 같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20) 그리고 한족 여자를 찾지 못해서 현지 원주민인 평포족과 결혼하는 것도 한족과 원주민 간의 갈등을 많이 야기했다. 이렇듯 여자가 귀한 대만 사회 구조에서는 전통 유교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동본과의 혼인 문제와 이혼, 그리고 개가 같은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8.06.
    -진행: 노혁이, 백조미

    -국제와의 연결 -때에 따라 희와 비가 엇갈리는 바다와 육지의 만남

    백:

    사는 곳이 섬이거나 삼면이 바다인 곳, 또는 일부 만이라도 바다가 있는 육지라면 언젠가는 바다를 매개로 하여 외부에서 온 사람과 만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타이완을 예로 들어 역사서 속에 몇 번 등장을 하였는데 선박이 해상에서 조난을 당하며 선원들이 현지에 대한 기록을 일기로 남겨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탐라문견록’과 같은 저서로 지금의 제주도와 국제와의 연결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7월 중순, 특별 취재 차 타이난을 다녀왔다. 올해 타이난은 1624년 네덜란드가 지금의 타이난 안핑구를 동인도회사 거점으로 삼으며 타이완의 국제와의 연결, 하나의 이정표로 보고 있어, 일련의 ‘타이난 400’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 타이베이 토크에서는 노 작가가 탐라문견록에 대해서 공유한다.

    노:

    《탐라문견록》이란 1731년 9월 정운경(1699~1753)이 제주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운경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에 와서 《탐라문견록》을 남긴 것이지요. 《탐라문견록》에는 정운경이 제주 전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와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글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풍랑을 맞아 이국으로 표류한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류기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18세기 100년 동안만 하더라도 일본으로 표류해온 조선인이 공식기록으로 남은 것만 409건에 표류민의 숫자도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하고,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치면 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게나 많이!!! 이렇게 많으니 나중에 표류해온 사람이 먼저 표류해온 사람 가운데서 고향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는 아버지와 아들이 상봉하기도 하였다

    제1화: 1687년 조천관 주민 고상영의 안남국 표류기
    -고상영의 안남 표류는 안남측이 인도적 견지에서 중국 상선에 부탁해 이들을 되돌려보냈고, 교류를 원하는 공문까지 보냈기 때문에 당시 크게 회자

    《탐라문견록》을 보니 제일 멀리 표류한 사람은 1687년에 베트남까지 표류한 고상영 일행입니다. 이들은 베트남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는 중국 상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제2화 : 1729년 신촌 사람 윤도성의 대만 표류기
    제3화 : 1729년 아전 송완의 대만 표류기
    제4화 : 1679년 관노 우빈의 일본 취방도 표류기
    제5화 : 1698년 성내 백성 강두추?고수경의 일본 옥구도 표류기
    제6화 : 1724년 도근천 백성 이건춘의 일본 대마도 표류기
    제7화 : 1723년 조천관 백성 이기득의 일본 오도 표류기
    제8화 : 1723년 성내 백성 김시위의 일본 오도 표류기
    제9화 : 1726년 북포 백성 김일남?부차웅의 유구국 표류기
    - 조선 후기 영조 시절인 1727년 2월 제주도 북포의 백성 김일남 등 9명이 추자도 근방에서 풍랑을 만나 배의 키와 노가 부러져 한달 이상 남쪽으로 표류했다. 어느 섬에 닿았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현지 주민들에게 배 안에 있던 <언해천자문> 을 보여주면서 서로 문자에 따른 소리를 익혔다. 그러다 저쪽 주민들이 “고려! 고려!”하고 외쳤다. 김일남 등은 고려가 조선의 옛이름인줄 몰랐다. 천자문에서 조(朝)자를 짚어주고 선(仙)자를 보여주자 현지인들이 말했다. “그래 조선과 고려는 본래 한 나라야.” 현지인들은 글씨를 써서 ‘유구국’이란 세 글자를 보여주었다.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였다.
    제10화 : 1704년 관노 산해의 일본 양구도 표류기
    제11화 : 1701년 대정현 관리의 일본 옥구도 표류기
    제12화 : 1729년 도근천 주민 고완의 일본 오도 표류기
    제13화 : 1720년 대정현 백성 원구혁의 일본 신공포 표류기
    제14화 : 1730년 관노 만적의 가라도 표류기

    《탐라문견록》에는 모두 15건의 표류기가 실려있는데, 그 가운데 제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공통적인 것이 표류민들이 제주도 사람인 것을 숨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왜? 1612년에 유구국(오끼나와) 태자가 탄 상선이 제주에 표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주 목사 이가빈과 판관 문희현 등이 이 상선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죽였다는군요.

    아니? 유교국가에서 어떻게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죽인단 말입니까? 바다를 무시한 조선의 관리들 행패에 혀를 차게 되는군요. 비록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이지만 결국 인접 국가에 이런 소문은 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표류한 제주도민은 보복이 두려워 제주도민을 숨기려고 애를 쓴 것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7.30.
    -진행: 노혁이, 백조미

    -청년들의 취업과 실업 문제

    백:

    40년 전, 물질적으로는 지금보다 못하겠지만 그 시대에는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았었다. 지금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모든 게 발전하였고, 학력도 40년 전보다는 보편적으로 훨씬 높아졌으나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더 앞서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여러 방면에서 40년 전 필자가 사회 새내기로 직장을 다녔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월등하다. 하지만 요즘 청년은 일자리를 구하는 게 예전만 못한 현실이라고 한다. 오늘 노 작가와 함께 타이완과 한국의 청년 실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노: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해 국내 대학·대학원 졸업자 3명 중 1명 이상은 미취업 상태였다. 취업률로 보면 65.1%로 역대 최저치.

    '문송합니다' à  의약계열(82.1%)과 공학계열(67.7%)의 취업률은 전체 평균(65.1%)보다 높았다. 반면 인문계열(53.5%)과 사회계열(60.9%), 교육계열(62.1%), 예체능계열(62.2%), 자연계열(62.3%)은 평균을 밑도는 것

    취업까지 걸린 시간을 보면, 35.2%가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다. 졸업 후 3개월 이내 취업은 22.7%, 9개월 이내 16.4%, 6개월 이내 14.9%, 10개월 이상 지난 후 취업한 사례는 10.8% 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에는 나아졌을까?

    국내 4년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이수영(가명·28) 씨는 졸업 후 대기업 입사를 원했지만 여러 차례 낙방한 끝에 중소 교육 콘텐츠 제작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각종 허드렛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일당백’ 신입 생활에 지쳐 1년여 만에 퇴사했다. 이후 출판사에 들어갔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1년여 만에 그만뒀다. 퇴사한 지 1년이 넘은 현재는 구직 활동을 그만둔 채 쉬고 있다. 이 씨는 “다시 ‘취업 전쟁’에 뛰어들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à 15∼29세 청년 비(非)경제활동인구 중 학업, 취업 준비 등의 활동 없이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은 약 39만 명

    중국도 청년 요양원 열풍 à 중국의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 '요양원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취업난에 지친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양원으로 몰리면서 청년 전용 요양원까지 등장했다.
    탕핑이란 드러누울 당(躺)과 평평할 평(平)의 조합으로, 편하게 드러눕는다는 의미다.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 중국 젊은이들이 구직을 포기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보낸다는 뜻

    취업난에 지친 청년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탕핑’을 즐기고자 ‘청년 요양원’을 찾는다"며 “시설 이용료는 보통 월 1500위안(약 28만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어 "탕핑족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통한 조기 은퇴를 계획하는 30대 ‘파이어족’도 소비를 줄이기 위해 이 요양원을 찾는다"

    대만도 청년이 힘들기는 마찬가지.

    집세에 쫓기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흙수저 출신의 청년을 일컫는 '베이피아오(北漂)'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야기시켰다. 제대로 수입을 내기 위해 여러 개의 일을 병행하며 돈을 버는 젊은 근로자인 '시에강(合作)'도 있고, 월급을 생활비에 저축할 돈이 없는 '위에강주(月光族)'도 있다.

    취업을 둘러싸고 맞물려 있는 저임금 문제, 거주 공간 문제, 불안정한 고용상태 등이 복합적 à “청년실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들이 취직해서 아무리 열심히 일 한다 해도 근근이 연명만 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가 된다는 것”이라며 “믿기지 않을 만큼 낮은 임금 수준과 이에 걸맞지 않게 높은 부동산 가격이 문제”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7.23.
    -진행: 노혁이, 백조미

    -서법/서도/서예

    백:

    서예는 그냥 의사를 전달하는 부호라는 고정 개념의 틀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으로 변모한 것은 중국 동진시대 왕희지(생몰: 서기 303년~361년)가 후세에 막대한 영향을 가하면서 붓글씨 자체는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왕희지의 글씨가 최고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서체 역사에서 극히 중요한 관건적 작용을 일으킨 서예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인적으로 서예작품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추상화로 바라볼 때도 있다. 지난 7월5일(금) 공항도시 타오위안(桃園)시립미술관의 분관으로 국내 유일의 서예 전문 미술관인 헝산서법예술관(橫山書法藝術館)을 다녀왔었다. 마침 좋아하는 서예 작품, 그것도 타이완에서는 보기 드문 대한민국의 근현대 서예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감살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오늘 타이베이 토크에서는 노 작가와 함께 중화권에서는 '서법(書法)'이라 불리고, 한국에서는 '서예'라 하며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부르지만 사실 다 같은 예술을 지칭하는 서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7월5일(금) 개막식 취재 및 전시에 대한 프로그램은 7월8일(월)에서 방송되었습니다.  https://kr.rti.org.tw/radio/programMessageView/programId/2/id/5562

    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주관하는 대규모 한국 서예전이 대만에서 개막(7/5)

    타오위안시 형산서법예술관

    대만의 서법(書法), 일본의 서도(書道)와 달리 예술성을 중시한 한국의 서예(書藝)만의 독창성을 부각하는 작품들을 선별, 전시. 10월 21일까지.

    한국에 하석선생님, 대만의 연농선생님과의 인연.

    연농선생님께서 서예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서예를 하면 공부를 하고,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내가 변하면 내 주위의 가족, 내 주위의 친구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내 가족, 내 친구가 변화하면, 그 주위의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게 공동체들이 변화되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대만에서는 서법이라고 하고, 한국의 서예라고 하는 것처럼,

    두 선생님들의 제자회도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은 하석 선생님의 겸수회라는 것이 있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모인 것. 서예를 취미로 하는 분들부터 전업 작가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선생님의 제자로 수업을 듣고 있다.

    대만은 일지서학회. 오직 한 뜻의 서학회. 20명이 안되는 소수정예여서 들어가기도 힘들고 엄격하다. 정말 서법은 일생의 업으로 삼은 분들이 들어가있다.

    한국은 대학입시에서 한문과목이 없어진 이후에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내가 대입을 치르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자과목, 사자성어 같은 것들이 중요했다. 하지만 2017년이후로는 국어과에서 한자를 깊게 다루지 않는다.

    90년대까지만해도 한국은 서예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많았다. 동네마다 서예학원도 있었고, 교양있는 사람의 필수 같은 것이 서예. 글씨를 잘쓰는 것을 인품과 동일시 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와 컴퓨터가 보급되고, 학생들이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이핑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서예학원의 인기가 식게 되었다.

    대만은 그래도 자국의 언어를 붓으로 쓰는 형태의 서법이 생활화되어있음을 느낀다. 한국은 기존 시대별 한자의 서체를 임서하면서 공부를 하는 형태라면, 캘리그래피처럼 보다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딴 자격증을 본 적이 있다. 포크레인 기사 자격증과 양복제단사 자격증. 당시 70년대에는 그런 직업이 선망의 대상.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 지금은 이런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서법을 하는 사람들, 서예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7.16.
    -진행: 노혁이, 백조미

    -이혼의 대가

    백:

    타이완에서는 비교적 쉬운데 한국에서는 아주 어려운 두 가지는 '이혼'과 '해고'라고 한다. 

    정계와 재계의 유명인 가족이 사돈 관계를 맺었다가 남여 주역이 이혼을 하며 일어난 한국 역대 최고의 이혼 소송 뉴스가 최근에 화제가 되었는데 오늘은 노 작가가 이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노:

    ‘1조3800억 재산분할+20억 위자료’… 한국 역대 최대 이혼

     

    1988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현직 대통령의 딸과 재벌그룹 아들의 결혼.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3년 퇴임 후 비자금 사건과 12.12 가담으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노태우의 임기: 1988년 2월 25일–1993년 2월 25일
     

    반면 SK그룹은 1994년 민영화된 이동통신사업 등을 인수, 이를 발판으로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라섰습니다.

    노태우 정부 말기 에스케이그룹(당시는 선경그룹)이 제2 이동전화 사업권을 땄다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사돈 기업 특혜’(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아들 최태원과 노태우 대통령 딸 노소영 결혼) 논란이 일자 사업권을 반납한 뒤 다시 한국이동통신을 넘겨받고, 김영삼 정부 시절 ‘피시에스(PCS) 비리’로 이동통신 사업자가 졸지에 5개로 늘어났다가 구조조정을 통해 3개로 준 게 대표적이다.

    선경그룹: 1926년 대성상회, 선경직물 à 70년대 석유화학 정유

    80년대 비디오테이프
    그러나 2015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돌연 혼외자가 있다며 이혼을 발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에서 최 회장이 재산 1조3800억 원을 노 관장에게 나눠주고, 위자료 20억 원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을 총 4조 원으로 보고 재산 형성 기여도 등을 반영해 각각 65%, 35%로 나누라는 게 판결의 핵심이다. 그대로 확정될 경우 한국의 이혼소송 사상 역대 최대의 재산 분할이 된다.
     

    회장 보유 SK㈜ 주식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이다. 1심은 이 지분이 부친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최 회장이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이어서 나눌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노 관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노 관장 부친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호막,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SK그룹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

    원이 최태원 회장의 4조원 가치의 SK지분이 형성되는데 장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 300억원 및 무형적 기여(권력형 특혜)의 기여도가 약 35% 정도가 된다며, 최 회장이 처 노소영씨에게 약 1조 3,800억원을 재산분할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불법 정치자금은 국고로 몰수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불법자금에 더해 권력형 부정비리(특혜)까지 가세해서 형성된 재산이라면 그 역시 몰수의 대상이 아닐까?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7.09.
    -진행: 노혁이, 백조미

    -不好意思-타이완에서 하루에도 몇 번 말하거나 듣는 말이다. 타이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무엇일까?

    타이완에서 말할 때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말을 ‘구두선(口頭禪)’이라고 한다. ‘구두(口頭)’는 말로, 입으로라는 뜻이며, ‘선(禪)’은 불교의 수행 ‘선’을 뜻하는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단어를 써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용어이다.

    타이완에서 쓰는 ‘구두선’이든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든 그게 일종의 습관이 되어서 쓰게 되는 말이라 생각이 든다.

    ‘구두선’ 외에 평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타이완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다. 예컨대 ‘실례지만/ 죄송한데/ 미안하지만…’(不好意思)이나 ‘… 부탁드립니다’(拜託、請), ‘괜찮아요’(沒關係),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謝謝)와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할까? 궁금하면서도 흥미로운 관찰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타이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에 대해서 노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온라인상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을 검색해 보면 몇몇 사이트에서 ‘진짜’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로 꼽는다.

    또 어떤 곳에서는 아니~ 진짜~ ㅆㅂ 근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있잖아. 한잔하시죠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보는 한 대만인은 “한국에서는 ‘씨*’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이 말을 들은 이후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해당 단어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를 의식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틀림없었다.

    역시 오래된 자료이지만, 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10년도에 서울과 전남, 충남의 초중고 학생 1260명의 언어 행태를 조사하여 발간한 「학교생활에서의 욕설 사용 실태 및 순화 대책」가 있다. 조사 대상들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사용한 욕설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 ‘씨*’이었다.
    엄마: 밥먹거

    선생님: 조용히 안해?

    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분명하다. ‘부하오이스 不好意思’.

    예를 들자면 지하철을 탔을 때, 출입문 근처에 서 있는 사람에게 뒷사람이 말한다.

    “부하오이스, 지에궈 不好意思, 借過.’

    출입문 근처의 사람도 대답한다, “부하오이스”라고.

    번역하자면 ‘실례합니다만, 지나가겠습니다’로 해석되는데 한국의 ‘내립시다’, ‘내려요’에 비하면 도입부가 하나 더 달려 있는 셈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엔 ‘부不·하오好·이意·스思? 좋은 뜻이 아니라고?’ 하고 의아해했다. 정작 중국어 교재에서 배우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일상적으로, 가장 자주 듣는 말이기에 BBC 여행채널에서는 ‘끝없이 사과하는 섬나라’라는 제목의 글로 이 단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The island that never stops apologising

    “‘부하오이스’ 단어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식당에서 웨이터를 부를 때, 직장 상사에게 잘못을 사과할 때, 심지어는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들을 수 있다 … 미국 뉴욕대 브루클린 칼리지 창치아쥐 부교수는 “이 말은 대만의 예의를 지키는 언어문화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데, 방해가 되거나 부탁을 할 때, 말을 걸 때에 사용된다”고 밝혔다 … 타이베이에서 지하철을 타면 어렵지 않게 '부하오이스' 합창을 들을 수 있으며 승객들은 조심스레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간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할 때 '부하오이스'로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메일을 열면 첫 번째 줄은 으레 '부하오이스'다. 이는 '약간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그외:

    부이딩 확실하지 않다. 그때그때 다르다.

    쏴이꺼/메이뉘
    통비엔후오자이쮜

    메이판파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7.02.
    -진행: 노혁이, 백조미

    -케이컬처의 위력- -타이완인의 케이팝 사랑-

    케이컬처, 케이팝,,, 한국 유행문화가 타이완에서 얼마나 인기인지는 한국에서도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 케이 스타가 타이완에 와서 ‘팬미팅’을 하거나 콘서트를 열 경우 아무리 비싼 입장권이라도 순식간에 매진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케이팝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죄송하게 생각하는데 노 작가님은 유행문화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계신다. 오늘은 케이팝 콘서트가 타이완에서 열림에 따른 타이완에서의 현상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친구가 12살짜리 딸과 함께 가오슝에 K팝 콘서트에 다녀온 사진을 봤다.
    딸과 단둘이 여행이 부러워서, 딸을 위해 표를 산 거냐고 물었더니, 딸이 그 공연에 가고 싶다며 아빠가 같이 가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4월 13일 가오슝내셔널스타디움 골든웨이브인타이완.
    이번 '골든웨이브'는 2020년 첫 개최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된 후 4년만에 재개됐다. 개최 소식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고6만석 규모의 관객석이 꽉 찼다. 현장을 찾은 팬들은 뜨겁게 환호하며 3시간 가량 진행된 축제를 마음껏 즐겼다.

    골든웨이브는 K팝콘서트 이름. '골든웨이브'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팬들의 기다림에 보답? 사실 아저씨들은 잘 모르는 그룹들. 앤팀(&TEAM)·(여자)아이들((G)I-DLE)·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부석순(BSS)·엔하이픈(ENHYPEN)·제이디원(JD1)·엔믹스(NMIXX)·스테이씨(STAYC)·제로베이스원(ZEROBASEONE)이 알찬 무대를 선보였다.
    가오슝 국립경기장은 대만 최대 규모의 경기장. 고정석 4만석. 이동식 좌석 1만5천석

    3,880 元、5,880 元、7,880 元
    관련기사를 보니, 한국 아이돌그룹을 보기위해 대만의 80대 할머니 팬들도 따라갔다는 기사가 있었다.

    추영우라는 배우가 MC를 봤는데, 이 배우의 인기도 대단했다.

    천치마이(陳其邁) 가오슝시장, 가오슝 시정부의 지원. 가오슝 국립경기장의 전폭적인 지원.
    가오슝은 최근 월드스타들의 공연을 유치. 최근 2년, 블랙핑크, 콜드플레이, 슈퍼주니어, 애드시런 등. 타이베이에도 1만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이 있다. 타이베이 아레나(台北小巨蛋), 타오위안 린커우 체육관(林口體育館), 타오위안 야구장(樂天桃園棒球場), 타이중 야구장(臺中洲際棒球場), 가오슝 아레나(高雄巨蛋). 타이베이돔은 현재 경기장으로만 사용이 가능. 5만석 이상의 초대형 공연장은 가오슝 국가체육장뿐. 경기장에 천장이 없는 상황에서 날씨가 따뜻하고 건조한 가오슝이 비가 잦은 북부보다 야외 콘서트에 적합

    가오슝시정부는 콘서트 대관료와 입장권 수익에 관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

    직접 콘서트에 다녀온 친구는 꽤 부자인데, 딸을 위해서 좋은 호텔을 알아봤는데, 그 토요일에 가오슝 전체의 호텔이 만원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한시간반거리의 타이난에서 잤다고. 가오슝이 이런 해외 월드스타들의 공연을 유치해서 가오슝 전체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어마어마한 것 같다.

    네덜란드의 설치 미술가인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이 제작한 대형 고무 오리 조형물인 ‘러버 덕(Rubber Duck)’이 지난 1월 27일 10년 만에 다시 가오슝에서 전시. 한 달 동안 진행된 이 이벤트에는 약 800만 명의 인파가 몰리며 오리 열풍.
    2023년 3월에 열렸던 블랙핑크의 공연때도 가오슝 지하철에 양일간 50만명이 몰렸던 기록이 있다. 새해맞이 참석인원 25만보다 더 많은 25만6천명이 국가체육장역에 몰렸던 사례. 당시 8천8백NTD 37만원 암표가 45배인 1천7백만원까지 올랐던 적이 있었다.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6.25.
    -진행: 노혁이, 백조미

    -한국인의 해외여행지: 일본 1위, 타이완 6위- -타이완인의 해외여행지: 일본 1위, 한국 3위-

     

    백:

    두렵고 지루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하늘길이 열리며 혹자는 국내외 여행을 이미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그들은 대부분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을까?

    해외 여행의 경우 각 국가마다 즐겨 찾는 나라가 있는데 타이완과 한국의 예를 들어 두 나라 국민들은 아시아의 일본을 가장 많이 여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2023년) 1월~9월 사이 타이완에 온 외국 국적 여행객 1위는 처음으로 일본이 아닌 홍콩이었다. 홍콩 여행객이 일본 관광객 수를 넘어선 이유로는 일본 엔화의 ‘환율’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동 시기 타이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순위 1위 홍콩, 2위 일본이며, 한국은 바로 뒤를 이은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4위에서 10위는 미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중국의 순이다.

    또 타이완인의 해외 여행지로 일본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해 해외 여행을 즐긴 타이완인의 반수를 넘는다. 그 뒤를 이어 중국은 2위, 3위는 한국, 4,5,6위는 각각 태국, 베트남과 미국의 순이다.

     

    노:

    2023년 한국인의 일본 방문은 696만 명, 한국인이 대만을 방문한 수는 64만명. 10분의 1수준. 하지만 가파른 상승세에 있다.

    한국인의 해외여행지로 일본, 베트남, 태국, 미국, 필리핀에 이어 6번째 높은 나라.

    얼마전에 아내의 친구 2명이 대만에 왔다. 어릴적 친구라서 이 친구가 친정에서 김치랑 깻잎 등을 가져다줬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택시타고 스린취 지엔탄까지. 숙소는 집근처의 저렴한 호텔을 예약했는데, 1박에 한화 8만원선. 타이베이시내에서는 비싸지 않은 수준. 낡은 건물이었지만, 실내는 아주 깨끗했다고 한다. 이분들은 마일리지로 대만에 온 케이스. 하루는 택시투어를 했는데, 전기자동차에 아주 단정한 기사님이 와서 예스진지 투어를 너무 잘했다고 한다.

    타이베이에 거의 90퍼센트 이상이 한국인이 손님이 사천요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하고. 용캉지에의 우육면도 맛있었고. 특히 친구들은 위스키와 고량주의 세계에 눈을 떴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카발란 솔리스트가 33만원에 팔리고 있는 사진을 보내줬다. 대만에서는 13만원.

    그리고 한국에서는 소주를 즐겨마시는 친구들이었는데, 고량주가 굉장히 높은 도수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넘어가고 다음날 숙취도 없다면서 고량주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다시 또 오고 싶다는 아내 친구들.

    대만에는 어느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을 할까?

    대만에는 우선 홍콩마카오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 2위로는 일본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 3위가 한국인. 4위는 미국인데, 의외로 미국사람들이 대만을 많이 찾는다. 그 이후로는 동남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싱가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6.18.
    -진행: 노혁이, 백조미
    -각국 사회의 직업에 대한 인식-

    백:

    여러분이 선망하는 직업은 무엇입니까?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십니까?

    어린이에게 미래 희망을 물어보면 그들이 꿈꾸는 원대한 포부를 시원하게 말해줄 것 같은데 청년 세대나 중장년 세대에게 같은 질문을 물으면 꿈이나 로망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직업을 말할 것 같다. 타이완과 한국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이 다르고, 동서양 사람들의 견해 차이는 더 큰 것 같다. 

    타이완은 의사, 검사, 변호사보다 엔지니어가 더 인기 직종으로 부상했다고 생각되는데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는 않지만 앙케트 조사 결과 1위는 서점(유명한 청핀서점), 2위는 패스트푸드점(맥더널드), 3위는 커피숍(스타벅스)..., 한국은 어떠한 직업을 선호하는지 궁금하다.

    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조사 국가별 직업 위세 인식

    한중일 모두 국회의원의 위세가 가장 높다. 중국의 영화감독도 위세가 대단하다는데, 신기.
    미국, 독일은 소방관이 1위. 일본도 소방관은 3위. 중국은 9위, 한국은 11위.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안정성이 높은 직업이어도, 육체노동을 하고 보상수준이 낮으면, 우리와 중국인은 위세도 낮다고 본 것.

    미국과 독일에서 국회의원은 중하위권, 12위, 10위 정도

    한국은 위세가 높다고 보는 직업과 낮다고 보는 직업 사이에 평균 점수차가 1점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과 더불어 한국은 2.3의 격차. 직업의 귀천을 가장 따지는 나라 1위.

    자기 직업의 위세 평가지수.

    한국인이 자기 직업의 지위가 가장 낮다고 여기는 편. 일본도 비슷. 직업에 대한 자존감이 낮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는 것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어디있냐고 하면서, 남의 시선 제일 많이 신경쓰고, 남이 하면 나도 해야하는 것.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업? 꿈의 직업? 1위 엔지니어, 2위 공무원, 3위 승무원, 유튜버도 상위권. 변호사 8위, 연예인 9위.

    대만에 처음 왔을 때,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택시. 택시기사들이 한국보다 훨씬 친절했다. 그리고 10여년을 살면서 길을 돌아가거나 그러는 사람을 딱 한명만 만났을 뿐. 말이 서툰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문화.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회사 동료의 아버지가 택시운전사. 그 친구가 그랬다. 대만에서 아버지가 택시운전을 하면 자랑스럽다고. 한국에서 택시운전사를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대만은 직장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한국은 평생직장, 뭐 이러면서 직장을 굉장히 크게 생각한다. 야근, 승진, 경쟁,…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 대기업 임원들은 승진해서 임원이 되었지만, 건강, 가정, 인간관계, 마음의 여유, 이런 것을 잃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데, 이것은 직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떤지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6.11.
    -진행: 노혁이, 백조미
    -단오 연휴-

    백:

    단오절이 지나고 나서야 겨울옷을 들어놓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단오 그리면 굴원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나는 가장 먼저 고전 로맨스이며 비극의 주역 백사전()이 떠오른다. 또 예전에 단오절에는 보너스도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업주들은 단오를 '그냥' 지나치고 있다. 

    노:

    중국단오절의 유래는 전국 시대 초나라 시인인 '굴원'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로부터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초(楚)나라의 관료이자 시인이던 '굴원'은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춘추전국시대 말기 최강국으로 부상한 진(秦)나라가 굴욕적인 요구를 해오자, 이를 단칼에 거절합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의사 결정을 하고 적지로 들어간 왕에 이어 그 다음 왕 역시 진나라에 대해 비굴한 정치 노선을 취하는 모습에 굴원은 대노합니다.

    대쪽 같은 그의 태도와는 달리,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관료들의 모함에 굴원은 결국 파직 후 유배를 가게 되는데요.

    유배지에서 굴원은 결국 초나라가 진나라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의 지조와 애국 충정을 보이기 위해 '멱라수'라는 강에 뛰어들었는데요, 그날이 바로 지금의 단오제의 기원이 됩니다.

    이웃 주민들은 굴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배를 타고 강을 돌아다녔으며,

    틈틈이 굴원이 물고기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에다 밥알을 뿌렸다고 하는데요. 결국 시신은 찾지 못 하게 됩니다. 시신을 찾지 못 하자 노를 저어 물살을 일으켜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훼손시키지 못 하도록 애썼다고 합니다.

    그 후로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단오절의 기원

    한국 단오절: 수릿날 또는 단오(端午)는 한국 명절의 하나로, 음력 5월 5일이다. 무더운 한여름을 맞기 전 초하(初夏)의 절기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를 지내는 때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월과 일이 모두 홀수이면서 같은 숫자가 되는 날은 생기가 넘치므로 좋은 날이라 생각하여 대개 명절로 정하고 이날을 즐겨 왔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는 글자이며, '오(午)'는 다섯을 뜻하므로 단오는 '초닷새(음력 5월 5일)'를 칭한다. 아울러 이 시기는 파종이 끝나는 때와 맞물려, 새로 지은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날이기도 했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따르면 '삼한사람들은 5월이 되면 씨를 다 뿌리고 난 후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때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 줄을 지어 뒤를 따르며 땅을 밟고 몸을 구부렸다가 치켰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춘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오를 수릿치날이라고 불렀다. 이로 인해 그네뛰기와 쑥으로 수릿치 절편(角)을 만들고, 조상제사를 지내는 풍속은 토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오라는 명칭과 이념은 중국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구체적인 행사내용은 토착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2]

    삼국 사람들은 이날 씨름과 택견을 하고 편을 나누어 활쏘기를 하였다. 또한 단오는 보릿고개를 넘기고 살아난 이들의 축제로 보리이삭을 거두는 시기에 맞추어 잔치를 벌였다. 한국에서는 설, 추석과 함께 단오에 연중 3회 신성 의상인 빔을 입는데, 단오에 입는 빔을 단오빔

    단오선: 단오가 되면 곧 더위가 시작 하므로,임금이 시종들에게 부채를 하사했던 풍속

    단오날에는 나쁜 귀신을 쫓기 위해 부적을 만들어 붙였다. 이를 '단오부', '천중부적', '치우부적'이라고 한다.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6.04.
    -진행: 노혁이, 백조미
    -64천안문사건-

    노: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주도로 1989년 4월 15일에 시작되었으며, 중국 정부의 군대가 전차들을 앞세워 유혈 진압하여 1989년 6월 4일에 진압된 항쟁이자 민주화 운동. 중화권에서는 유혈 진압이 일어난 6월 4일에서 따와서 '류쓰(六四)', '육사사건(六四事件)'이라고 부른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六四를 그대로 썼다가는 바로 검열을 받아서 그런지 5월 35일,

    후야오방 사망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심장 질환으로 73세에 사망한다. 대학생들이 애도하기 위해 톈안먼 광장에 모이기 시작하고, 중국의 개혁이 느리게 진행되는데 불만을 표한다.

    당에서 개혁가로 통하던 후야오방은 자유주의적 성향의 지식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환영 받았으나 1987년 실각한다.

    4월 17일부터 21일 시위확산 è 4/21 후의 추도식

    5/15 중국-소련 우호 조약이 깨진 이래 처음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중국-소련 정상 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다. 이 방문은 두 나라의 60년 가까운 적대적 관계를 공식적으로  끝낸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톈안먼 광장을 점거한 탓에 베이징 공항에서 환영식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중국 정부 지도자들에게 엄청나게 창피한 일이었다.

    5/20 군부대 등장 6/3피의 밤 6/4 종료

    21명의 학생대표 지명수배 à 노랑새작전으로 탈출

    비공식 사망자수 1만명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5.28.
    -진행: 노혁이, 백조미
    -타이완 북부지역 택시투어 추천과 비용-

    백:

    타이완과 한국은 이제 국제운전면허증을 상호 인정함에 따라 비즈니즈 목적이나 자유 여행을 즐기는 분들께는 희소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처음 타이완을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자동차를 렌트하여 스스로 운전하며 곳곳을 다니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 아무래도 현지 사정을 잘 모르고 지리적 위치나 도로 여건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비즈니스 여객은 택시를 대여하여 다니면 편리할 것이고 자유 여행하시는 분들은 택시 투어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노 작가가 추천하는 타이완 북부지역 택시 투어에 대해 알아본다.

    노:

    2022년 2월 17일 한국과 대만은 '국제운전면허증 상호인정 양해각서'에 최종 서명하면서 상대국에서 쉽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대만은 미묘하게 한국과 교통법규가 다른 점이 있음. 오토바이는 좌회전이 안되는 것. 빨간불에 우회전이 안되는 것.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서 위험.

     

    8시간 한국돈 16만원. 차량에 따라 가격이 다름. 여성운전자 17만원. 한국어는 21만원…

     

    4시간 한정 노선:

    4A노선: 타이베이 - 예류/스펀/진과스/지우펀(택1) - 타이베이 귀환

    6시간 한정 노선:

    6A노선: 타이베이 - 예류/스펀/진과스/지우펀/허우통 고양이마을(택2) - 타이베이 귀환

    8시간 추천 노선:

    8A노선: 타이베이 - 예류 - 스펀 - 진과스 - 지우펀 - 타이베이 귀환

    8B노선: 타이베이 - 스펀 - 핑시 옛거리 - 지우펀 - 지룽먀오커우 야시장 - 타이베이 귀환

    8C노선: 타이베이 - 예류 - 스펀 - 허우통 - 지우펀 - 타이베이 귀환

    8D노선: 타이베이 - 중정기념당 - 양명산국가공원 - 칭티엔강 - 샤오유컹 - 타이베이 귀환

     

    인터넷에 어떻게 코스를 구성하면 좋을지에 대한 팁이 많이 있음.

     

    투어 출발하기 좋은 시간은?

    - 9:00~10:00 : 시내에 들어오는 시간이 오후 5~6시로 저녁 식사 후에 다른 일정을 하기 좋습니다.

    - 11:00~12:00 : 지우펀에서 홍등을 오래 보시려는 경우 좋은 시간대 입니다, 대신 예류 구경 후 나오는 시간이 2시 전후로 식사 시간이 애매합니다.

    - 12:00 이후 : 오전에 다른 일정을 하고 오거나, 지우펀을 중점적으로 보시려는 분들이 주로 출발하는 시간입니다.

     

    추천 택시투어

    화련
    기차타고 화련에서 만나는 투어(8시간)가  있고, 타이베이에서 출발하는 투어(12시간)도 있음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5.21.
    -진행: 노혁이, 백조미
    -타이완인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백:

    타이완에 거주하거나 타이완에서 유학 또는 직장을 다니거나 잠시 타이완으로 관광을 오신 외국인들이 타이완인들은 어떠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할까? 어딜 가나 좋거나 나쁘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외국인의 시각에서 타이완 사람을 볼 때 대부분 '아주 친절하다'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노 작가가 본 타이완인은 어떠한 성격을 지녔고, 그 특징은 무엇일까? 

    노:

    대만 사람들의 특징

    친절왕 :정말 친절하다. 마음 깊은 곳의 친절이라고나 할까. 일본이 오히려 좀 격식을 차린 것 같은 친절함인데, 대만의 친절은 정말 마음이 느껴지는 친절. 캐릭터를 좋아한다. 백화점 시장, 편의점에 팬시상품들이 엄청 많다. 중국 반, 일본 반의 혼재된 매력. 외모, 인테리어 등 평온하고 느긋하다. 회사에 자신의 인생을 걸지 않는다. 가족 중심 부모님과 함께 노는 문화가 부럽다. 저녁밥, 저녁술도 같이. 여친, 남친이 부모님과 함께 차를 정말 좋아한다. 한국사람 커피같다.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옷차림이 수수하다. 화장의 차이? 날씨의 차이? 특히 부자를 외모로 알아보기 힘들다. 한국처럼 명품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럴까? 친구/연인간 더치페이가 일반적 식당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을 서로 민폐라고 여긴다. 가령 핸드폰 충전? 영어를 잘하는 편 아침을 밖에서 사먹는다. 오토바이가 참 많다. 지하철에서 물마시는 것도 안된다. 타이베이는 전세계에서 강우일 2위의 도시다. 런던이 1위. 그래도 항상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길면 한나절 내리고 중단. 채소를 무쳐서 먹지 않는다. 거의 볶아서 먹는다. 매운 음식이 별로 없다. 물가는 싼데, 부동산은 한국과 비슷하다. 야시장의 문화 한국사람들이 꼭 사오는 누가크래커 먹어본 사람이 별로 없다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5.14.
    -진행: 노혁이, 백조미
    -각 나라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하는 건?-

    백:

    민족이나 문화가 다르다 보니 각 국가에서 가장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또는 소소한 일상에서도 외국에 가면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오늘은 타이완,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사람들이 자국이 아닌 외국에 가서 느끼는 '견디기 어려운' 일들은 무엇인지, 그 견디기 힘들다는 걸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전혀 심각하지 않은 일로 보이지만..., 오늘의 이야기~

    노:

    한국사람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1위, 김치없이 라면먹기. 김치없이 우육면 먹기. 김치없이 먹어야하는데, 이제는 12년 살았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특히 칭둔뉴로면. 한국 설렁탕에 면을 넣은 느낌인데, 김치가 없다. 밥도 없다… 힘들다.

    다른나라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대만은 대만 음식이 맛없다고 하는 것. 그리고… 내 생각에는 중국사람과 같은 동포 취급을 하는 것. 독일은 시간 안지키기. 프랑스는 걸어다니면서 먹기. 폴란드는 주변국가를 칭찬하기. 일본은 면 먹을 때 소리 못 내게 하기. 홍콩은 런천미트 맛 없다고 하는 것 등.

    여담이지만, 대만에서는 스팸을 사기가 힘든 것 같다. 까르푸에서만 팔고 시중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한국인을 힘들게 하는 방법이라는 조사. 7개

    1위 라면에 김치 없다.

    2위 고기구워 먹을 때 소주 안주기… 대만사람들은 고기집에서 술을 많이 안마시는 듯

    3위 밥먹은 뒤에 커피 안주기. 한국은 정말 커피 많이 마시는데. 대만도 역시 차를 꼭 마신다.

    4위 화장실 갈 때 휴대폰 못가져가게하기. 어느나라나 같지 않을까?

    5위 인터넷속도 느리게 하기

    6위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못누르게 해서 자동으로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리기

    7위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 먼저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게 하기.

    번회편:
    8. 자판기커피 다 나오고 램프켜질때까지 문열지 않기

    9. 남자 소변보러 갈때 입구부터 지퍼내리기 금지

    10. 치킨에 맥주 못 마시게하기

    11. 여자들 휴계소 남자화장실 이용 못하게 하기

    12. 흡연자들 바닥에 침 못 뱉게 하기
    비행기도 한국사람들이 착륙하면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태국에서 우버기사가 구분하는 법:
    중국인들은 도착하면 그제야 밖으로 나오는데 5분은 기본으로 기다림

    일본은 부른곳에 가만히 있는데, 자꾸 폰 한번보고 도로 한번보고 안절부절하고 있고

    한국인들은 택시 부르고 가만히 안있고 자꾸 택시쪽으로 걸어와. 그리고 발견하면 미친듯이 흔들어.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5.07.
    -진행: 노혁이, 백조미
    -강진 이후에 계속되는 여진-

    4월3일에 이어 4월말에도 여진이 있었다. 화롄에서 건물 2동이 기울어졌는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4/3일 지진 이후에 안전진단결과 철거 판정이 내려져서 사림이 모두 퇴거했던 것.

    921 대지진으로 2,415명이 사망했고 29명이 실종되었으며 11,305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가옥 51,711채가 붕괴했고 53,768채가 반파되는 등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대만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 자연재해이자, 3,276명이 사망했던 1935년 신주-타이중 지진에 이어 대만에서 2번째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

    대지진을 비롯한 재난이 발생하면 전 세계 언론은 가장 극적인 피해 현장에 몰려든다. 한국에서도 4/3일 지진에 대해 25년만의 최악의 지진. 최대강진, 구조작업 진행중… 등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많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터키와 시리아에서 이번과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5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물론 대만에 비해 자원이 훨씬 부족한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 6.7의 지진이 발생한 후 이곳 도심이 거의 내려앉다시피 하면서 평평해졌다.

    대만도 단층 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진 대처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이뤄왔다. 많은 사람들은 1999년 대만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치치 지진이 경종을 울렸다고 말한다. 당시 지진으로 2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건물 수만 채가 파괴됐다. 0층짜리 거대한 건물이 기초가 무너져 거의 온전한 형태로 옆으로 누워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엄청난 피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많은 새 건물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전문가들은 건물 설계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건물의 기반이 되는 기둥이 충분히 크지 않았고 기둥에 들어간 강철 양도 부족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내가 1990년대 대만에 있을 당시 건설 비리 소식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바닷모래로 만든 콘크리트로 지어진 것으로 밝혀져 비난받았다. 바닷모래는 강에서 채취한 모래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염분 함량이 높다. 결국 철근을 부식시켜 '콘크리트 암(concrete cancer)'을 유발한다. 당시 그 건물은 중간 규모 지진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타이베이 시장이 조사한 결과 오래된 기름통이 새 건물의 콘크리트 기둥 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건설사는 콘크리트를 아껴 수익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속임수를 쓴 혐의로 기소됐다.

    그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치치 지진 이후 건축법이 개정됐다.

    이제 대만의 모든 신축 건물은 기본적인 내진 설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건물이 심각한 구조 파괴 없이 일정 수준의 흔들림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준이다.
    정부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건물에 요구되는 내진 기준을 지속해서 개정하고 있다. 1999년 이후에는 내진 보강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통상 건물 외관에 철재 골조를 더하거나 추가 기둥과 같은 보강재를 넣는 방식이었다. 이는 교량과 같은 인프라 건설에도 적용됐다.

    그리고 부패한 건설 관행은 처벌받았다. 2016년 타이난 섬 남서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17층 건물이 무너져 수십 명이 사망하자 해당 건물 건설 관계자 5명이 기소돼 수감됐다.

    이번 주까지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해 10여 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자는 단 한 명이었다. 앞서 언급한 화롄시 10층 건물 붕괴 사고다. 나머지는 산사태와 낙석으로 인한 사망

  •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4.04.30.
    -진행: 노혁이, 백조미
    -타이완과 한국의 교육비-

    사교육 없고 재수,삼수,,,하지 않는다면 교육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백:

    전쟁이 나도 동화책은 팔린다는 말이 있듯이 자녀 교육에 부모들은 아끼지 않는다. 타이완의 교육비는 대체로 높지는 않지만 전반적인 연봉은 한국 대비 낮은 편이라 부담감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한국의 교육비용 가운데 사교육에 쓰이는 돈이 많다고 한다. 타이완이나 한국 모두 교육열로 유명한데 타이완이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개인 경험으로 보아 그렇게까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생이 희망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걸 보면 한국이 타이완보다 훨씬 높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학벌주의보다는 실용적인 면을 더 중요시 하는 게 보편적이며, 선망했던 명문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을 경우 거의 차선 대학교레 진학하기 때문에 재수,삼수,,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립대학교의 등록금은 매우 저렴하며 사립대학교의 등록금은 공립 대비 많이 높지만 매달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감당할 만한 상황이다.

    타이완에서는 중학교를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다. 비록 거주지에 속하는 학군에 따라 그 중학교에 들어가지만 해당 중학교가 어떠한지에 따라 나중에 희망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에 일단 원하는 중학교 입학이 우선시 되고 그래서 그 주변 집값은 오르기만 한다. 고등학교는 시험을 거쳐야 하지만 중학교에서 제대로 배워야만 선망하는 고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다.

    오늘은 타이완과 한국의 교육, 특히 교육비용에 대해서 알아본다.

    노:

    대만의 교육 시스템은 한국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나뉜 교육과정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는 점이 같다. 다른 점은 대만의 학기는 8월에 시작된다.

    대만의 공립 초등학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소지를 기준으로 배정된다.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이 아이를 보내고자 하는 학교 주변에 모여드는 바람에 집값이 더욱 오르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육은 매 학기 20주, 매주 5일 수업이 원칙이며 매시간 수업은 40분이다. 등교 시간은 오전 7시 50분. 대만에는 맞벌이 부모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안친반’으로 향한다. 안친반은 우리나라의 ‘돌봄교실’ 같은 교육 시스템으로 이곳에서 숙제를 하거나 음악, 미술 등의 특별활동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선 ‘돌봄교실’ 또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추첨을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대만의 초등학교는 숙제하는 시간만 1시간 30분~2시간이 걸릴 정도로 숙제가 많은 편이고, 안친반에서 학교 숙제나 공부를 하다 보면 답 베끼기를 시키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적 있어 보습학원을 선택하는 부모도 있다. 학교 진도에 맞춰 공부시키거나 영어, 미술, 피아노, 운동 등 다양한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받게 하는 것이다.
    대만은 영어 교육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 부모들 역시 영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국제 학교 또는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사용하는 사립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별도의 교육비 없이 점심 식사 비용으로 한 학기에 5,000NTD(약 20만원)를 내는 것에 비해, 학비가 1년에 30~40만NTD(약 1,200만~1,600만원)에 달하는데도 대기 인원이 많아서 못 들어가는 실정이다. 대만 교육부는 몇몇 공립학교를 선정해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언어 혁신학교’를 마련했다.
    대만의 명문고 경쟁… -타이베이의 경우 3위권 안에 드는 명문고로는 (남학생) 젠궈중학교(건국고등학교建國中學/建中), 사대부속중학교(사대부속고교師大附中, 남녀공학), 청공중학교(성공고등학교成功中學), (여햑생) 베이이뉘(타이베이제1여자중학교北一女), 사대부속중학교(사대부속고교師大附中, 남녀공학)와 중산여자중학교(중산여고中山女中), 징메이여자중학교(경미여고景美女中)이며, 각 지방에도 해당 지역의 상위권 명문고등학교가 있다.

    대만의 국립대학 등록금은 1년에 6만원(약 225만원) 정도고, 사립대는 12만원(약 451만원) 수준이다. 저소득층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려고 정부는 학자금대출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대학과 대학원 재학, 군복무가 끝날 때까지 무이자(이자는 교육부 부담)이고, 은행 정기예금의 연이율에 1.5%를 추가한 이자를 적용해 상환. 보편적으로 대만 학생들은 자립심이 강해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츠안도 자신의 힘으로 독립하기를 바란다. 대출받아 학비를 충당하는 경우, 졸업 1년 뒤부터 상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대학등록금… 대만의 2~3배… 평균 등록금은 679만원이며 의학계열이 979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전문대는 114개교가 동결했으며 1인당 평균등록금은 612만원이다.